저는 한 출판사에 다니는 편집자입니다.
이번에 저희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이 검열 아닌 검열(?)을 당해 너무 답답한 마음에 처음으로 아고라에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출판사에서 근현대문학을 초판본 형태로 출간한다는 기획을 하고, 기획된 100종 중 50종(현재는 47종)을 출간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작품이 때 아닌 ‘검열’을 받고 출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현대문학 전체를 다루는 것이기에 당연히 납북, 월북, 북한 작가들이 포함되었는데,
그중 한 작품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저자 사후 50년이 지나지 않은 경우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저작권을 획득하고 책을 출간합니다. 북한 저작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납북, 월북 작가를 포함하여 북한 작가의 저작권은 ‘남북저작권센터’에서 진행했답니다.
북한 저작권의 경우, 답변이 오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리고 비용 처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려 보통 선출간 후지불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송영, 안회남, 이태준, 최명익 등의 작품을 북한 저작권 신청하고,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출간 준비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즈음 ‘남북저작권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부터(아마도 이번 정권부터인 듯) 임시정부 수립 이후(48년 이후)에 북한에서 출간된 책의 경우는 저작권을 ‘통일부’에서 담당하기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희 50종 중에 48년 이후 북한에서 출간된 책의 경우는 황건의 <<개마고원>>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통일부로 넘어가자 이제 본격적으로 ‘검열’(?)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마고원>>의 본문 파일을 요구하더니, (발췌본인지라) 나중에는 원본을 달라고 했습니다.
요청대로 원문을 복사하여 주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동안 제작 완료된 47종을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통일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원래 이런 타이틀은 반입을 허가하지 않는데, 한국근현대문학 출간의 취지를 고려하여 조건부 승인’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조건부 승인이란 ‘전체 190쪽 분량 가운데 23쪽은 전부 삭제하고, 그 외 29쪽가량은 자신들이 표시한 부분을 삭제하면’ 출간을 허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2000년대에 문학을 통일부 기준으로, 마음대로, 삭제하라니요.
진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습니다.
삭제하라는 부분을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가령 소설에서 당시 시대 상황을 이야기한 장면인데도 ‘김일성’이 들어가면 무조건 삭제하라 하고,
소설의 주인공이 북한 쪽의 입장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을, 가령 남한군이나 미군을 ‘원수’, ‘놈들’이라고 부르는 것도 전부 삭제하랍니다.
또 미군이 북한 마을에 와서 행패를 부린 부분은 아예 도려내라고 합니다.(대체 미군이 선량하지 않으면 출간될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픕니다.)
“그사이에 평양에는 북조선 인민 위원회가 창설되고 김 일성 장군이 위원장으로 추대되였다.”(삭제하라는 문장)
“더 안 될 일로 나는 조국의 이 엄중한 날에 원쑤에 대한 싸움보다도 내 개인을 위한 적은 생각에 빠지고 있으며, 빠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밑줄 친 부분 삭제 요청 문구)
“정치부대 대장은 우선 래일 밤중에, 놈들이 밤이면 기여드는 십릿길 오른편 삼림 속을 기습하겠는데 총소리가 들리는 대로 그 안골 쪽에서 탄약더미에 불을 지르면 놈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면서 량쪽 전투가 다 유리하리라고 하였다.”(밑줄 친 부분 삭제 요청 문구)
“...고모네가 늦게 떠난 것이 확연한 것처럼 필시 이것은 늦어서야 피난 가다 숨은 두 녀자를 미국 놈들이 발견하고 겁탈하려 끌어냈던 것이며, 반항하는 그들에게 수없는 총탄으로 보복한 것에 틀림없었다...”(이 부분 포함 거의 반 장가량 삭제 요청)
이상이 <<개마고원>> 검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지금 답답한 것은 ‘검열’ 자체보다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줄까 걱정되어서입니다.
현재 회사에서는 그쪽에서 압력을 받게 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아무래도 출간을 포기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그들은 문학이 무엇인지, 예술이 무엇인지 아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미 연구도 많이 되어온 <<개마고원>>을, 출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 북한 문학 연구도 금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기만 할 뿐입니다.
도대체 출판의 자유가 이런 식으로 침해받아도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분이라도 <<개마고원>>을 기억해 주십사 하고 <<개마고원>> 줄거리를 넣고,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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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으로 끌려간 지 두 달 만에 경석은 1945년 6월 하순에 비를 맞으며 집으로 몰래 숨어든다. 스스로를 “어떤 학대받는 주린 짐승”처럼 여기는 경석은 버들골 고모네 집에 숨어 있다가 돌아온 것이다. 순희네 집안 사람들에 의해 일찍 징병에 내보내졌다고 생각하는 경석은 울분을 참으면서 낮에는 숨어 지내고 밤이면 뒷방으로 나오는 은둔 생활을 계속한다. 적극적 저항보다는 일신의 안위와 자유로움을 기대하는 해방 이전의 경석은 나약한 지식인의 표정을 보여준다. 하지만 해방이 되고 면 자치위원회와 보안대가 조직되면서 경석은 적극적으로 해방조국의 건설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그러면서 순희와의 앞날에 불길한 예감을 감지하게 된다. 경석은 순희가 정치 학교에 나오지 않자 추궁을 계속하고, 정태기와 정영익의 주도로 보안서가 습격받자 경석은 총상을 입는다. 반란이 수포로 돌아간 뒤, 경석은 순희에게 집에서 도망을 치라고 이야기하지만, 순희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1946년 3월 토지 개혁 법령이 내려, 태기네 밭이 거의 몰수되기에 이르고, 경석은 면 민청위원장에 당선된다. 순희에게 다시금 집을 떠날 것을 권유하지만, 순희는 어머니의 만류에 의지를 꺾게 되고, 경석은 순희가 단순히 마음과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경석에게 순희는 낭만적 이상형의 여성이었던 것이다. 신흥리로 돌아온 경석은 안계숙을 보면서 첫눈에 반해 얼굴이 달아오른다. 순희와의 관계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여성을 자기의 시선 안에 담게 된 것이다. 이해 겨울 맹증을 교부하러 갔다가 눈보라에 휩싸인 산길을 넘는 계숙을 만나, 경석은 귀중한 벗을 얻은 것 같은 느낌에 젖어든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허전하거나 외로운 밤이 되면 계숙과 순희 사이에서 경석은 심리적으로 갈등하게 된다. 순희는 계숙과 경석의 사이를 오해하고는 계숙에 대한 원한을 품은 채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한 순희를 보고 소름이 끼친 계숙은 마을을 떠나 군 여맹으로 간다.
2년 반이 지나고 1949년 섣달 그믐께에 남쪽에서 태기를 찾아온 영익은 ‘국군’이 북진해 들어올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이야기한다. 순희는 자살사건 이후 조병호와 혼인을 치르지만, 남편의 불신과 폭력 속에 유산을 하게 된다. 1950년이 되어 양 축사 문 개방 사건과 당원 등록부 도난 사건 이후 전쟁이 발발하자, 경석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을 받는다.
전쟁이 나자 경옥은 군대에 자원해 나가고, 경석은 인민들의 애국심과 열성을 발휘시키고자 노력한다. 전선이 이북으로 옮아와서 격전이 지속되고, 경석은 마을 주민들을 산속으로 소개시킨다. 전선 상황이 악화되면서 경석도 빨치산이 되어 마을을 떠나며 동지들에게 용감성과 헌신성을 강조한다. 경석은 헌신적으로 투쟁하다가 태악이 등에게 붙잡혔다가 소작농인 원갑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순희는 남편 병호에게 살해되고, 1950년 겨울이 가고 봄이 와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경석은 동생 경옥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지칠 줄 모르는 전투 정신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계숙과의 사이가 좋아진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이다. 경석은 병문안 온 계숙과 더욱 많은 일을 할 것을 다짐하며 오월에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작품은 종결된다.